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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금박의 명맥을 잇는 156년 금박장 가문

작성일 2019-10-23

조선 왕실 금박의 명맥을 잇는
156년 금박장 가문

 

_ 김기호 금박 이수자

 

 

 

 

 


왕실의 품위와 국가 번영의 염원을 나타내던 금박은 현대에 이르러 귀한 날을 기리는 기품의 상징이 되었다.





조선 시대 금박 옷은 단순히 금의 화려함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지요. 이는 입은 사람의 신분이나 왕실의 권위, 통치자의 국가 번영에 대한 염원을 다양한 금박 문양에 담은 것입니다. 왕가에만 쓰이던 금박은 현대에 이르러 결혼이나 회갑 등 경축일에 입음으로써 인생에서 소중하고 뜻깊은 날을 기념하며 착용한 사람의 기품을 살려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조선 철종 때부터 5대째 금박장을 지내오며 장인 공방의 가풍을 고스란히 잇고 있는 김기호 금박장 이수자를 아름지기에서 만나봅니다.

 






조선 왕실 장인에게서

이어 내려온 금박장


장인의 공방이 밀집해 있는 북촌의 골목길마다 작은 깃발을 든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 행렬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경사진 골목길 끝에 다다를 즈음 ‘금박연金箔宴’이란 자그마한 문패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ㄷ자형 한옥에 들어서면 대문간 초입부터 금박 소품들이 눈길을 끕니다. 푸른 빛깔 책갈피, 보타이를 장식한 매화 금박 문양, 휴대폰 케이스를 장식한 용 금박 등이 일상용품의 품격을 높여주는 듯합니다. 작은 마당의 캐노피 아래에서는 금박 문양 체험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왼쪽은 금박 작품 전시 공간, 오른쪽은 장인의 작업실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조선 시대 철종 때부터 금박을 시작한 장인 명가는 1대에서 5대에 이르기까지 서울 사대문 안을 벗어난 적이 없다.

현재는 북촌 공방 밀집촌에 자리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김덕환의 아들인 김기호 이수자가 아름지기의 방문에 반가이 인사합니다. 조선 시대 철종 재위 때(1856년)부터 금박을 시작한 금박의 명문가. 1대 김완형, 2대 김원순, 3대 김경용, 4대 김덕환, 5대 김기호로 이어지며 왕실 출신의 장인으로는 유일하다 할 것입니다. 금박장金箔匠이던 김기호 씨의 선조들은 출퇴근을 경복궁과 창덕궁 낙선재로 했고, 장인 1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통인동, 화동, 즉 궁궐에 인접한 사대문 안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순수 혈통으로 장인다운 면모와 사가史家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인 명가입니다. “선조 때부터 한 가지 가업에 종사하고 그 일을 후대에 고스란히 물려준 집안이 사실 흔치 않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가업과 가풍을 지닌 집에 태어난 것에 한없이 감사하며 살고자 합니다. 인구 5천만의 초현대적인 대한민국에서 바쁘게 살아가면서 아버님, 할아버님, 증조부 선대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세월을 살아오셨는지 생생히 아는 것도 누구에게나 돌아가는 행운은 아니라 생각하지요. 저도 한때는 금박연이 아닌 로봇 설계를 업으로 삼았는데 자연스레 금박장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요. 저뿐만 아니라 가업이 끊길 뻔한 위기도 찾아왔지만, 묵묵히 이를 지켜온 선조대를 생각하면 더욱 열심히 작업에 임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아버님인 김덕환 장인의 증조부 김완형은 조선 시대 궁에서 물품을 조달하는 하급 관직에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궁중 행사에 입는 금박 예복은 중국에서 수입해서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행사 일에 맞춰 예복이 들어오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직접 예복을 지어 금박을 물리게 된 것이지요. 금은 왕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금박 작업은 궁 안에서만 진행되었답니다. 특히 김기호 이수자의 할아버님 김경용 장인은 천재 조각가로 여겨질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나셨다 합니다. 종이 도안도 없이 수백 개의 판화 문양을 즉흥적으로 그려내셨다 하니 말입니다. 다양한 크기의 금박판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떨어지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아버님에게서 수차례 전해 들었다 합니다.

 

 


 

 
금박연 안에 자리 잡은 전시실에는 금박 두른 활옷과 다양한 소품 등이 눈길을 끈다.


 






세월의 켜처럼 조금씩 변해가는

금박 작업


금박장이라고 하면 한복이나 소품 등 직물 위에 금박을 이용해 문양을 찍어내는 단순한 일이라 상상하기 쉽지요. 조선 시대 궁궐에서는 금박을 위해 금을 제련하는 장인, 금을 고르고 얇게 펴는 장인, 금박 문양판을 나무로 새기는 장인, 아교풀을 만드는 장인, 천에 금박을 물리는 장인 등 단계별로 여러 명의 기술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한복에서 양복으로 의생활이 변화하고 혼례와 같이 아주 특별한 날에만 금박 물린 옷을 입게 됨에 따라 금박 작업량이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직접 옷을 짓고 금박을 입힌 한복을 주문하거나, 전시용 복식이나 유물을 재현할 때 금박 장인이 나서야 합니다. 김기호 이수자는 평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복식사와 문양사 등을 꾸준히 공부하며 이 분야의 진정한 장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특히 이전에는 주로 직물에만 금박을 올렸으나 요즘에는 휴대폰 케이스, 엽서나 카드 이외에 새로운 패턴의 댕기나 금박두루주머니를 내놓기 위해 다양한 문양을 연구 중인데 전통 유물이나 도자기, 사진집, 건축물 등을 세세히 눈여겨보고 이를 응용하기도 합니다.



‘금박’이란 금 덩어리를 얇게 두드려 편 재료로 문양을 표현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대나무 종이를 이용해 원단을 직조하면서 금박 패턴을 짜 넣기도 하고 금가루를 뿌려 금박 문양을 직물에 얹는 방법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밀하고 아름다운 문양을 재현해내기 위해 순금을 얇게 두드려 100나노미터 두께로 만든 얇디얇은 금박지를 손끝으로 톡톡 눌러 문양을 찍어내는 방법이 현존하는 방법입니다. 이때 더없이 중요한 것이 나무에 금박 문양을 새기는 것과 직물 위에 문양을 찍어내는 풀의 역할입니다. 소에서 추출하는 아교풀보다는 민어 부레로 만든 풀이 부드럽지만 탄성이 뛰어나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금박 장인의 작업 공정은 무늬 도안하기-금박 문양 조각하기-금박지 만들기-풀 만들기-무늬찍기-두드리기-건조시키기-뒷손질하기로 온전히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만 진행합니다.




가장 오래된 금박에 대한 기록은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분에 따라 복식의 금박 적용에 차등을 두었다는 사실이 <삼국사기>에 나옵니다. 고려 시대만 해도 화려한 금박의 멋을 즐겼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넘어오면서 양반이나 중인은 물론이며 궁중에서조차 절제된 금박 사용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검소하고 청렴한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궁궐에서도 아주 특별한 날에만 금박 옷을 착용한 것이지요. 문양에도 엄격한 신분 질서가 있어 공주 옷에는 꽃 문양을, 중전 옷에는 화문이나 봉황문을 허용했으며, 대비의 옷에는 화문·봉황문·용문이 모두 쓰였습니다. 그 밖에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글자·꽃·과실·새·곤충·동물 무늬 등을 금박판에 새겨 넣었습니다.




예부터 옷에 금박을 두른다는 것은 그 사람의 기품을 드러내고 귀한 가문의 출신임을 알려주는 증표였을 법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으로 문양과 글자마다 소망을 담아낸 것이니 금박은 영원불멸의 아름다움과 권위를 상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생에서 가장 축복 받을 혼례 때, 금박 두른 혼례복에 폐백을 드리고, 이들 부부가 결혼하여 손주손녀를 낳으면 할머니가 금박 두른 돌복을 선물하는 풍습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잘 물린 금박처럼 평생토록 빛이 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예부터 옷에 금박을 두른다는 것은 그 사람의 기품을 드러내고 귀한 가문의 출신임을 알려주는 증표를 뜻한다.

5대째 금박 장인 이수자 김기호 씨가 금빛 화려한 문자 금박을 올리고 있다.

 


 

조선 시대 철종 이래, 왕실 출신 장인으로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 내려온 ‘금박연’이다. 중국에서 수입하던 금박의 궁중 예복을 국내화한 1대 김완형, 명성황후의 국장을 위해 황실 장인으로 금박을 물린 2대 김원순, 종이 문양 없이 수백 가지 금박 문양판을 판화로 제작한 3대 김경용,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 장인 4대 김덕환, 그리고 현재 가회동에서 이를 가업으로 이은 김기호 금박 이수자까지 156년에 걸친 한국 최고의 금박 장인가다.








출처 : Arumjigi News Letter Vol.23 Autumn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