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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은
한국인이 만든 세계적인 것입니다.

작성일 2019-10-23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소년 같은 그의 눈이 반짝입니다.

유쾌한 그의 이야기 속엔 그러나 도자를 향한 진중한 철학이,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백자 작가로서 얻은 세계적 명성에도 흔들림 없이 그는 새로운 재료와 작업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집니다.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도자를 빚는 방식이 여느 작가와는 다릅니다.

흙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재료를 선택하는 기준에서도.

‘빚는다’라는 표현은 참 아름다워요. 헌데, 빚는다는 말 자체는 행위에 국한되어 있지요. 저는 ‘제작한다’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오늘 날의 도예가라면 행위를 넘어서 재료에 대한 이해, 과학적 호기심, 활용에 대한 분석 등 총체적인 지식을 가진 제작자가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학생들에게 이전에 닳도록 쓰인 단어나 개념을 먼저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도예 작업에 사용되는 물리적, 화학적, 역학적 지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조선백자나 고려청자와 같은 개념을 떠올리면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본인만의 색깔이 담긴 백자 제작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습니다.

백자는 대학원 졸업 후에 선택하게 된 분야입니다. 독일 킬(Kiel)지역에 있는 무테지우스 조형미술대학(Muthesius Kunsthochschule)에서 석기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이후, 유럽 최고의 도자회사인 ‘마이센(Meißen, 1710)’에서 제게 작업 의뢰를 했어요. 21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이센의 얼굴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위해서였습니다. 비록 백자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를 믿어보라는 큐레이터들의 적극적인 추천 덕분이었지요. 석기든, 백자든 재료학적인 원칙은 같습니다. 2년에 걸쳐 다양한 방식의 백자 제작 연구를 진행한 후, 라이프치히에 있는 그라시 박물관(Grassi Museum)에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전시가 큰 호평을 받아 전 세계 순회전을 할 수 있었고, 세계적인 바이어들의 작품 구매가 이어질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마이센에서는 큰 신뢰를 얻지 못했어요. 마이센의 백자와 황갑순의 백자는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시를 진행했던 시기는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이후 동독의 간부들이 경영권을 가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국제적 감각이 모자란 상태에서 한국의 작가를 신뢰하기도 어렵고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려워했어요. 그래서 ‘퓌에스텐베르크(Fürstenberg, 1747년)’로 회사를 옮겨 작품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그때 만든 퀴세트(Qi Set) 백자 시리즈가 2003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의 ‘best of the best’에 선정되었고, 이후 다수의 수상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모든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제작연구로 탄생한 작품들이 좋은 평가로 이어지게 된 것에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Vase, Porcelain 

 


 


Qi Set, Porcelain, reddot design award winner 2003



활동무대를 한국, 그리고 학교로 옮기셨어요.

사실 저는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없었어요. 특히 교직에 뜻을 두고 있지 않았지요. 귀국을 결심한 결정적 배경에 도자라는 전공의 위기가 있었어요. 콘텐츠가 부재했고 비주얼이나 산업디자인 쪽으로 학생들이 몰리면서 전공을 이어갈 대학원생이 한 명도 없었지요. 저는 학창시절을 굉장히 행복하게 보냈어요. 그래서 이런 행복감을 내 후배가, 나의 학생들이 함께 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0에서부터 시작하자’라는 마음으로 귀국길에 올랐는데 그 길을 응원해주신 분이 ‘쌈지’ 천호균 대표님과 ‘재단법인 아름지기’ 신연균 이사장님입니다. 한국 도자를 응원하는 조력자들이 많이 있으니 교육도, 작품 활동도 열심히 하라 독려해주신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2003년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는 호기롭게 도자 전공의 5년 뒤, 20년 뒤, 30년 뒤,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의 비전을 다 세워두고 나만 믿고 따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전통보다는 기본적인 형태와 재료로 커리큘럼을 진행하다보니 기존과 다른 수업방식에 대해 학교의 반대도 있었어요. 하지만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5년쯤 지나니까 도예과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학교 작업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가마들 중 일부는 재학생들이 상금의 일부를 기부해서 구매한 거예요. 학생들이 열심히 함께 해준 덕분에 전시, 수상, 연구 실적이 많아졌거든요. 연구를 강조했다기보다는 좋은 사례들을 만드는 데에 집중한 결과지요. 부임한지 10년이 지나 2013년에 서울대학교 교육자상을 받았어요. 감회가 새로웠지요.

 

 

 

 

작가로서, 교수로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요?

많은 분들이 요즘은 백자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하세요. 요즘 들어 저의 고민이기도 하지요. 공예에서 한 분야의 작가 수가 너무 많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교육자로서 그 관리 역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장르의 개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흙을 새로 만드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현대 한국 도자 공예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손쉽게 접하고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재료를 만드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다행히 석기(stoneware) 점토 중에서 매력 있는 흙을 발견해서 다음 학기부터 시작을 해보려고 해요.

 

더불어 도예의 정서나 감수성이라는 것이 다원화되었기 때문에 도자 문화권의 저변을 흔들 수 있는 것을 재료학적으로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도자는 흙으로 형태를 제작한 후 그 위에 유약을 발라 굽습니다. 요즘 흙도, 유리도, 돌도 아닌 실리카 소재를 개발해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유리와 가장 가까운 성분인 석영의 과포화 현상을 이용한 재료이자 유약 자체입니다. 유약도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생각의 전환입니다. 어떤 물질이 과포화하면 청량한 색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석영의 경우만 과포화 현상 시 청량한 색이 유지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바로 청자 빛깔입니다. 다만 흙은 가소성을 가지고 있어 점토가 되는데 이 재료에는 가소성이 없어요. 가소성을 부여하는 방식, 형태를 만드는 방식을 연구해서 어떤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지 탐색해볼 계획입니다.

 

석영의 과포화 현상을 이용한 소재로 제작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앞 공공디자인 설치물 ‘1980’. 

이 소재는 재료의 배합 비율에 따라 다양한 색상 구현이 가능하다.



 

새로운 재료, 제작 방식의 개발 모두 기대가 됩니다.

현대와 미래의 유산으로써 공예가 가진 힘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요?

공예는 오래된 예술이지요. 국가와 민족을 떠나서 서로 결속하고 이해도를 증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안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호들이 숨어져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 전통 가치의 구현, 보존, 발전은 제조의 문제가 아니라 연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서 ‘전통’이란 키워드로 전시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오랜 시간에 걸쳐 역경을 딛고 다양한 발전을 이뤄낸 전통 그대로의 면면은 2%만 보여주어도 충분하지요.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나갈 전통에 대한 가치와 감성을 은은하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한국인이 만든 세계적인 것’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물레를 가르칠 때에는 원의 위대함에 대해, 손이 가지는 능력에 대해, 재료가 가지는 정교함에 대해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그 이상의 발전은 학생들, 작가들의 몫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전공을 살리기 위해서 기본적인 형태와 재료 연구에 제 에너지를 응집시켰다면 이제는 학생들이 다양성과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터를 닦는 것이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갑순 Hwang Kap-sun

198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를 졸업했고, 2000년 독일 킬, 무테지우스 조형미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에서 활동을 하다가 200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도예전공 전임교수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Prize

1998 – 2000 Foundation Dr. Hans-Hoch-Stiftung Neumunster,Germany

2001 The Bronze Prize, World Ceramic Exposition 2001 Korea, I-chon, Korea

2002 Justus Brinckmann Prize 2002, Museum fur Kunst und Gewerbe Hamburg, Germany

2003 red dot : best of the best, red dot design award 2003,

Design Center Nordrhein Westfalen, Germany Kultur Aktuell,

Landeskulturstiftung, Kiel, Germany

2005 red dot fur hohe Design Qualitat, red dot design award 2005,

Design Zentrum Nordrhein Westfalen, Germany

2007 Diessnerprize, Diessen, Germany

2008 Grassiprize, Grassimuseum, Leipzig, Germany